일가 김용기 탄생 100주년 기념 사업 『일가 김용기와 가나안 이상촌 운동』출간
일가 김용기 탄생 100주년 기념 첫 사업으로 『일가 김용기와 가나안 이상촌 운동』이 출간되었다.
지난 2월 28일 가나안 농군학교에서『일가 김용기와 가나안 이상촌 운동』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 책은 제1부 ‘일가 김용기 이전의 이상촌 운동’ 제2부 ‘일가 김용기 : 이상촌의 탄생과 시련’ 제3부
‘제3차 이상촌: 가나안 이상촌’ 제4부 자료편 등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1960년대부터 1980년까지의 교무일지, 교육과정 소개, 일가 선생 관련 자료 등을 첨부하여 우리나라
가나안 이상촌 운동의 역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체계화한 역작으로 그 가치가 높다.
(림영철 지음/944쪽/일가재단)
한국일보 보도 내용입니다 - 여기를 클릭하면 기사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밥풀 한알도 버리지마라" 근검의 삶 재조명
가나안농군학교 설립 김용기 선생 탄생 100주년
'한국인 4,000만이 매끼 1알의 밥풀을 버리면 4,000만개의 밥알을 버리게 되고, 보통 밥 한 사발이 2,500알쯤 되므로 매끼마다 1만6,000그릇을 버리게 된다. 즉 국민 1인당 밥풀 1개만 절약해도 1만6,000명이 먹고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나안농군학교를 일군 일가(一家) 김용기(金容基ㆍ1909~1988)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가재단(이사장 김상원)이 그의 생애와 사상, 활동을 정리한 <일가 김용기와 가나안 이상촌 운동>을 펴냈다.
일가는 가나안교회의 정결한 기독교정신에 입각해 일제강점기 이래 민족자강운동인 이상촌운동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근면ㆍ자조ㆍ협동을 기치로 한 새마을운동이 일가의 가나안농군학교에 뿌리를 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되돌아보는 일가의 생애는 경제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 요즘 더욱 각별하다. 경기 양주군 봉안마을의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23세 때인 1932년 부친의 유언에 따라 이상촌을 건립키로 하고 고향에 봉안이상촌을 처음으로 세웠다. 당시 그의 이상촌운동은 서재필, 안창호의 맥을 잇는 기독교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다.
이후 여러 실험을 거친 끝에 1962년 경기 광주에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한 일가는 평생 욕심으로부터 자신을 비워 몸소 근검절약하고 이를 가르치는 삶을 실천했다. 막사이사이상(1966년)과 제1회 인촌문화상(1973년)을 수상했다. 그가 사망했을 때 장례는 농민운동의 업적을 기려 전국 농민장으로 치러졌다.
1960년대 가나안농군학교의 교육자료는 어둡고 가난했던 시대를 헤치고 경제기적을 일군 '근대화 세대'의 정신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호미를'. 이를 모토로 한 가나안농군학교가 각계각층의 교육생들에게 일깨운 근검절약의 실천항목은 이렇다.
첫째, 밥을 먹을 때는 과식하지 말고 한 알의 밥풀도 버리지 말 것. 둘째, 반찬도 먹을 만큼만 가져다가 먹고 남기지 말 것. 남기면 낭비가 될 뿐 아니라 쓰레기가 되어 환경을 오염하는 주범이 된다. 셋째, 물을 적당히 쓸 것. 세수할 때는 대야의 70%만 떠서 사용하고 설거지나 샤워할 때 물을 계속 틀어놓고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깐깐한 내용들이다. '비누를 사용할 때 남자는 2번만, 여자는 3번만 문지르자. 여자 손은 작고 부드러워서 남자보다 많이 문질러야 한다'는 항목이나 '치약은 2~3㎜만, 튜브 구멍이 큰 것일 경우엔 1~2㎜만 써라'는 항목도 눈에 띈다.
가나안농군학교의 교육생들은 지금까지 62만명에 이른다. 폐 산소통으로 만든 '개척의 종' 소리를 듣고 깨어나 새벽 4시30분부터 밤 10시30분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을 통해 근검절약과 개척정신, 효 사상을 수련한 이들이다.
일가재단과 가나안농군학교는 일가 탄생일인 9월 5일을 정점으로 그 사상과 발자취를 기리는 연중행사를 벌여나갈 예정이다. 특히 9월 중엔 세계가나안운동(WCM) 세계대회와 일가사상 국제학술대회, 가나안농군학교 동문대회 등이 잇달아 열린다.
장인철기자 icj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