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정신

복민(福民)주의
배경
복민사상의 역사·문화적인 배경은 일제하 시기인 1930년대 이후 한국농촌의 피폐한 상황이다. 일가 김용기 선생의 황무지 개척과 농민운동, 독립운동, 정신교육 활동에 기초가 되었고 우리 민족 근대사 뿐만 아니라 기독교 사상사적인 면에서도 매우 큰 영향을 끼쳐왔다.
"복민"(福民), 즉 하나님의 복 받은 백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단어와 연관지어 "복민사상" 또는 "복민주의"라고 칭한다. 그 의미는 문자 그대로 "복음에 따라서 사는 복 받은(받고 있는, 받을)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말하는 사상이다.
복음에 따라서 사는, 복 있는 하나님의 사람의 삶의 모습이다. 역사적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여기에 맞추어서 복음을 재해석하여 그에 따라서 결단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의미
실천
김용기 선생은 깨달은 바를 실천에 옮기는 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모두가 포기하고 뒤로하는 농촌에 역으로 소망이 있다는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헌신의 삶을 살았다.
그리하여 그의 사상은 농촌의 개혁과 새마을 운동의 정신적인 요체로 발전하게 된다. 그에게 노동은 저주의 고통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과 창조적인 행위였다. 그리고 가장 신성한 것이었다.
근면과 검소한 생활도 엄격히 실천이 되었다. 음식에서도 일식삼찬의 규칙이 적용되었고 식단의 내용은 건강을 위한 과학적 영양분석을 토대로 짜여 졌으며 동시에 검소 간결한 것이었다. 밥은 한 알을 남겨서도 안 되었고 반찬은 남겨서도 안 되었다. 옷도 중국인민군 옷 같은 복장 하나로 일할 때나 예배할 때나 통일을 하였으며, 신발은 고무신이나 겨울에는 싼 털실 같은 것을 신었다. 치약은 3밀리미터 이상을 짜서는 안 되었고 비누도 3번만 문지르고 세수를 하도록 하였다. 불도 엄격히 아껴 쓰도록 하여서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썼다. 하나님의 재산을 낭비하는 것은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집은 간소하게 지었으나 봉안 이상촌 시절의 집은 위에서 볼 때에 십자가 모양으로 독특하게 집을 지었는데 이는 그의 실천적 의지를 보여준다.

효(孝)사상 - 내리사랑 올리효도
가나안의 효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가나안농군학교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실천운동이다.
효사상은 우리 민족의 삶과 사고의 밑바탕이 되어 온 전통 윤리이다. 그러나 산업화의 과정에서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효의 정신은 점점 잊히고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물질문명의 눈부신 발전과는 대조적으로 정신문명은 제 자리 걸음도 못한 것이다. 좀 더 잘살아 보겠다고 치달아 보면서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밑바닥에 숨어 있는 본래적인 의미를 찾아내어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이 있다면 잘라내고 맞지 않는 부분은 수정해서 오늘날에도 그 아름다운 정신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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