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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및 활동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괭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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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 김용기 선생은

개척자이십니다.

일가 김용기 선생은 한손에는 성경을, 한손에는 괭이를 드시고

한 평생 황무지 개척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시며, 

​나라의 영광된 미래를 위해 사신 분입니다. 

일가 김용기 선생의 이상촌운동은

조국 근대화의 원류

일제하에서는 농민 의식 개혁과 농촌의 발전을 위한 조국 광복을 위해 애쓰셨고, 해방 후에는 사회 교육 및 민족 운동에 힘쓰시는 한편 

농촌사회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근대화와 신앙의 생활화 운동에 생애를 바치신 분입니다.

우리 민족의 정신을 일깨워 미래를 준비하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개척적이고 진취적인 일꾼들을 길러내기 위해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하셨습니다.

개척정신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모두에게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소위된 이웃들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주는 변치않는 삶의 정신이며 가치입니다.

1912

9월 5일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 봉안마을에서 출생.

1927

광동학교를 졸업하고 김봉희와 결혼.

1932

“흙과 농촌을 지키라”는 부친의 유훈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모친의 신앙, 그리고 몽양 여운형 선생의 “민족 구원의 대도를 걸으라”는 가르침을 따라, 여운혁 장로와 함께 “조국이여 안심하라”는 뜻을 품고 고향에서 봉안 이상촌 운동을 시작하여, 일제 말까지 농민저항운동과 이상촌·독립운동을 전개함.

1936

‘봉안청년회’를 조직하고 야학을 개설하여 농업, 민족정신, 생활개선, 교양교육 등을 실시.

1946

경기도 고양군에서 제2차 삼각산농장 개간을 시작.

1952

경기도 용인군에 제3차 에덴향 농장을 개척하고, 복민운동의 전개는 올바른 교육에서 비롯된다는 뜻으로 농민 자녀를 위한 중학교와 농업기술 교육기관 ‘복음농도원’을 설립.

        1954

경기도 하남(현 하남시 풍산동 황산마을)에 가나안교회를 세우고 제4차 가나안농장을 개척하여, 현재 제1가나안농군학교의 모태를 이룸. 인근 지역을 순회하며 신앙심·민족정신·경제자립정신을 일깨우는 신앙부흥운동과 농민운동을 전개.

1962

책임 있는 농촌사회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농장 안에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

1966

라몬 막사이사이상(사회공익부문)수상 “기독교 말씀의 원리를 실제 상황에 적용하여 농업을

개선하였으며, 농경생활에 새로운 기쁨과 존엄성을 불러일으킨 산 교재가 되었다”는 공로를

인정받음.

1968

저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 발간

1973

제1회 인촌문화상·새마을 춘장 협동상 수상, 「심은대로 거두리라」 발간.

강원도 원주 5차 신림농장 개척 (현재 가나안농군학교 원주)

같은 해 강원도 원주 치악산 기슭에 제5차 개척지인 신림농장을 세우고, 재단법인 가나안복민회를 설립하여 복민운동의 기반을 확보.

1978

필리핀 세이비어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음. 흙과 농촌에 바친 공로를 인정받았으며, 저서 「그분의 말씀 따라」를 펴냄.

1982

가나안농군학교를 통해 젊은 농군·영농후계자 양성교육을 확산시키는 한편,

‘복민훈련원’을 설립하여 성직자, 대학생, 중·고등학생, 교회 청년들의 교육을 강화.

1988

8월 1일 별세. 농민단체를 비롯한 24개 단체가 참여한 우리나라 최초의 ‘농민장’으로 장례를 치렀으며, 선생이 미리 마련한 가족묘역의 지정된 반 평 묘지에 안장됨. 이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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