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이 그리워… 베트남 고아들의 아버지 되다
朴대통령-베트남 경제인 만찬에 초청받은 ‘라이따이한’ 지미 팸씨
“아버지의 나라 한국과 어머니의 나라 베트남이 좀 더 가까워진다고 하니 기쁘고 떨리네요. 박근혜 대통령의 국빈 방문으로 한국과 베트남이 경제적 교류, 그 이상의 관계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7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본부 대강당에서 열린 ‘제23회 일가상·제5회 청년일가상’ 시상식에서 기자와 만난 지미 팸(문용철·41) 씨는 무척 설렌 듯 보였다. 이날 그는 ‘청년일가상’ 수상을 위해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일가상’은 가나안농군학교 창설자로 농촌 발전에 평생을 바친 일가(一家) 김용기 선생(1909∼1988)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일가재단이 1991년부터 매년 아시아 지역 발전에 공헌한 개인 및 단체를 찾아 수여하는 국제상이다.
팸 씨는 공로를 인정받아 8일 베트남을 방문 중인 박 대통령이 하노이 그랜드플라자호텔에서 주최하는 한-베트남 경제협력 만찬 간담회에도 초청됐다. 그는 현재 베트남에서 ‘코토(KOTO)’라는 레스토랑 및 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샌드위치와 파스타로 유명한 이 레스토랑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이곳이 베트남 최초의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 수익 창출이 목적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다.
그는 부모에게서 버려졌거나 노숙하는 아이들에게 바텐더, 요리, 서비스 교육을 센터에서 2년간 시킨 후 이들을 고용해 일자리를 주고 있다. 지난 14년간 이렇게 취업한 아이들이 총 700여 명에 달하며 그중에는 하노이나 호찌민의 큰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취업한 아이들도 상당수다. 팸 씨의 아버지는 1960년대 후반 사업 문제로 베트남에 왔다가 그의 어머니를 만나 그를 낳았다. 아버지는 그가 여덟 살 때 한국으로 돌아갔고, 어머니는 팸 씨와 누나 등 나머지 가족을 데리고 호주로 이민을 갔다. 아버지는 그가 스물세 살 되던 해인 1995년 사업차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망했다. 팸 씨는 장례식 영정사진으로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록 우리를 떠났지만 많이 그리워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인터뷰 대부분을 영어로 말했지만, ‘아버지’라는 말만은 또박또박 한국어로 표현했다. 관광학을 전공한 그는 부친 장례식이 끝나고 한 달 뒤 베트남 관광회사에 취업했다. 호찌민 시 길거리에서 코코넛을 팔고 있는 10대 아이들을 우연히 보면서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지고 다니는 지게는 성인인 자신이 들기에도 너무 무거웠다. 16시간이 넘도록 노동을 해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처음에는 저녁을 사주었다. 이런 소문이 돌면서 단 몇 주 만에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 60명이 모이기도 했다.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4년간 준비한 끝에 자기 돈 200달러를 밑천 삼아 ‘코토’를 만들었다.
팸 씨의 꿈은 한국에서도 ‘코토’를 여는 것이다. “한국은 베트남과 상황이 달라 고아는 적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외로운 아이들이 분명 있을 테지요. 그 아이들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겁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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