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史를 바꾼 한국교회史 20장면] ⑩ 기독교 정신의 신앙공동체 새마을운동 모태가 된 김용기 장로의 이상촌(理想村)-가나안농군학교 이 땅에 노동·봉사·희생정신 일깨웠다 1962년 3월 9일, 경기도 광주군 풍산리(현 하남시 풍산동) 가나안농군학교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은 척박한 황무지를 개간해 고구마 감자 딸기 등의 작물을 재배하고 양계와 양봉장을 운영하는 학교 현장을 둘러봤다. 방문객을 가장 놀라게 했던 건 학생들의 생활태도였다. 이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를 한 뒤 애국가를 부르며 운동장을 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달린 뒤 한 끼에 정해진 노동시간인 4시간을 일하고 나서야 식사를 했다. 또 물자 절약을 위해 비누는 2∼3번만 문지르고, 치약은 3㎜만 사용했으며 효과적인 농장운영과 지도력 배양을 위해 분임토의에 적극 참여했다. 1시간 30분간 이곳을 참관하고 설명을 들은 손님은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이자 교장인 김용기 장로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만 하면 농촌이 잘 살 수 있지 않겠는가. (학교를 위해) 뭘 도와드리면 좋겠소?” 이때 찾아온 손님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농업으로 가난을 극복하고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가나안농군학교에 큰 영감을 받았다. ‘근로·봉사·희생’을 교육이념으로 삼고 빈곤과 싸워 함께 잘 살아보자는 목표를 지닌 가나안농군학교는 1970년 정부주도로 실시된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됐다는 점에서 한국 농민운동사와 현대사에 한 획을 그었다. 김용기 장로의 차남으로 당시 생활주임을 지낸 김범일(77) 가나안농군학교장은 “2006년 한나라당 의원 교육 때 학교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내게 ‘아버지가 농군학교에 다녀온 뒤 영감을 받아 새마을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해 당시 가나안농군학교가 새마을운동에 미친 영향력을 더 정확히 알게 됐다”며 “박 전 대통령 방문 이후 공무원, 이장 등 새마을 운동 지도자들이 찾아와 이들에게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가나안농군학교의 개척노하우와 생활태도 교육을 전수하며 민족의 빈곤탈출에 기여코자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된 가나안농군학교의 전신은 봉안 이상촌(理想村)이다. 봉안 이상촌은 농민운동자인 김용기 장로가 1931년 고향인 봉안마을(현 경기도 남양주시 능래2·3리)에 세운 마을로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에서 영감을 얻었다. 김 장로는 황무지 300평을 가족과 함께 일구다 35년 뜻을 함께 할 10가정을 모집해 마을을 확장했다. 그는 마을주민과 각종 생활개선·협동운동을 펼쳤고 농사에 선진농업기술을 적용하고 보급하는 데 힘썼다. 김 장로의 노력으로 이상촌은 나날이 발전했다. 그는 고구마 농사와 복숭아·배·포도 등 과일 농사를 장려해 주민들의 소득을 높였으며 생활하는 데 편하도록 옷을 개량해 마을에 보급했다. 그 결과 인구는 5년 만에 40명에서 64명으로, 밭은 2만1487㎡(6500평)에서 4만2975㎡(1만3000평)로, 과수원은 1만3223㎡(4000평)에서 3만9669㎡(1만2000평)로 늘었다. 하지만 그는 한번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전국의 황무지를 찾아다니며 개척했다. 서울과 경기도 등지에서 제2, 제3의 이상촌을 세우던 그는 62년 2월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했다.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올곧은 농촌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김 장로는 학생들에게 민족 주체성과 국가·사회·가정관, 농업 기술 등을 가르치는 한편 철저한 근검·절약 생활을 강조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보급해도 정신이 바로서지 않으면 빈곤을 퇴치할 수 없다는 확신에서다. 이 때문에 김 장로는 학생들에게 가래침 함부로 뱉지 않기, 금연·금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등 구체적인 실천 강령을 제시했고 자신부터 몸소 실천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가나안농군학교는 빈곤퇴치운동의 상징이자 농촌지도자의 산실이 됐고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주도한 새마을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김 장로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62년 향토문화공로상을 받았다. 해외에서도 그의 정신을 높이 사 66년엔 필리핀 마닐라에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73년 강원도 원주에 제2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우는 등 평생 농촌지도자교육에 힘을 쏟은 김 장로는 88년 80세를 일기로 소천했다. 이후 김 장로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농촌지도자 육성에 힘썼다. 92년부터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로 ‘가나안 개척정신’을 전파했다. 올해로 개교 40주년을 맞은 가나안농군학교는 중국, 필리핀, 우간다, 볼리비아 등 12개국에 해외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우고 세계 곳곳에 빈곤퇴치운동을 펼치고 있다. 박용규 총신대 교수는 “김용기 장로가 펼친 이상촌운동과 가나안농군학교는 기독교 이상을 사회에 실천한 좋은 사례”라며 “현대 기독교인도 이를 본받아 나라 사랑과 노동의 중요성 등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자문해주신 분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 △박용규 총신대 신대원 교수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 △이상규 고신대 부총장 △임희국 장로회신학대 교수 기사원문보기->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7527763&cp=nv
top of pag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