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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일가상 농업부문 수상 이윤현 현명농장 대표
사람이나 동식물 모두 주인을 잘 만나야 매사 평안하다. 그런 점에서 경기 화성시 비봉면 현명농장의 배나무들은 참 주인을 잘 만났다. 올해 일가상 농업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이윤현(61) 대표가 마치 친자식 돌보듯 자신들을 보살펴 주기 때문이다. 일가상은 가나안농군학교의 창설자로 농촌 발전과 국민 정신계몽에 한평생을 바친 일가 김용기(一家 金容基) 선생의 유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제정된 상. 이 대표는 특히 한 그루의 상록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40여 년에 걸쳐 명품 배를 만들어 온 외곬 개척정신을 높이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해안고속도로 비봉 나들목을 빠져나와 곧바로 현명농장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막걸리 익는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온다. 얼마 뒤 배나무에 뿌려줄 것이다. “나는 굶어도 배나무는 안 굶긴다. 내가 먹지 못할 것은 배나무에게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이 대표의 신념. 그래서 쌀겨, 깻묵, 키토산, 참나무 숯가루, 아카시아꽃 등으로 만든 자연산 녹즙, 당귀 계피 감초 등 한방 영양제 등을 먹여 과육(果肉)을 살찌운다. 자신의 이름에서 ‘현’자, 동갑내기 아내 이명자 씨의 이름에서 ‘명’자를 따 붙인 현명농장 배는 이들 부부의 금실처럼 당도 맛 향이 뛰어나다. 이 대표는 3대째 87년에 걸쳐 배 과수원을 운영해 왔다. 특히 이 대표가 서울 강남 개발이 시작된 1970년대 초 현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과 현대아파트 78동 자리에 있던 자신의 배 밭 5000여 평을 팔고 황무지나 다름없던 현재의 자리로 농장을 이전한 것은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요즘 시가로 4000억 원이 넘는 금싸라기 땅을 오직 배 농장을 계속하기 위해 평당 1만7000원씩에 팔아넘긴 뒤 미련 없이 보따리를 꾸린 것이다. 배 밭을 수용당한 뒤 인근 토지를 대토 받아 땅부자가 된 사람들은 엄청난 자산가가 됐으나 그는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다. “당시 압구정동은 행정구역상 경기 광주군 언주면 압구정리였죠. 강북에서 나룻배를 타고 소풍을 올 정도의 시골이었습니다. 개발 직후 서울 성동구 압구정동이었다가 얼마 뒤 강남구 압구정동이 되었습니다. 저도 주위 사람들이나 부동산업자로부터 농사를 포기하고 땅부자가 되라는 유혹을 많이 받았지만 가업(家業)과 배 농사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때의 결정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2만2000여 평에 2200그루의 배나무가 심어져 있는 농장을 돌보기 위해 이 대표는 오전 2, 3시에 일어난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연 400t(11개들이 2만 상자) 정도를 수확해 대만과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하고 있고 롯데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 CJ홈쇼핑 및 인터넷 주문(hmfarm@hanmail.net)을 통해 전량 판매한다. 신고 수황 원황이 주요 품종. 자체 생산하는 배즙도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제가 1남 3녀를 두었고 자식들 돌보듯 배나무를 대해왔습니다. 배를 돈으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건강이 다하는 날까지 농장을 계속할 것이고 제 자식 중에 누군가가 가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장 한구석에는 그가 ‘맏며느리’라고 부르는 나무가 있다. 다른 배나무들에 비해 덩치가 크고 줄기도 굵다. 그래서 그런지 750g 이상짜리 배가 매해 350개나 열린다. 이처럼 그는 농장에 있는 배나무 하나하나의 이력을 꿰뚫고 있다. 깐깐하고 신세 지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유통과 마케팅은 아내와 딸의 몫이다. 아내는 “현명농장 배는 내 남편을 닮아서 지나치게 달지도 않고 뒷맛과 향이 깨끗하고 오래간다”고 자랑한다. “언젠가 서울의 유명 백화점에서 배를 주문하겠다고 하기에 가져갔더니 담당 직원이 마치 하청업자 대하듯 위세를 부려 그 자리에서 호통을 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왔습니다. 자식처럼 키운 배를 그렇듯 자존심을 상해가며 팔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에게도 자부심을 드리고 싶습니다.” 수시로 외국에 나가 선진 영농기법을 배워온 덕분에 그는 친환경 과일 필터 보호봉지 개발로 국내 국제특허를 획득했고 저온저장고 저장기술과 환기 자동화 시스템 개발 등 41건의 실용신안등록 및 상표등록을 마쳤다. 영농기술 전파에도 남다른 노력을 하고 있다. ‘문화와 이야기가 있는 영농’을 위해 2002년부터 매년 4월에는 배꽃축제, 10월에는 배따기축제를 열고 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쯤 ‘이만하면 됐다’는 명품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배나무들을 돌보고 있을 뿐입니다.” 기자가 슬그머니 “압구정동 금싸라기 땅을 헐값에 넘기신 것을 정말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느냐”고 되묻자 그는 “아마 그랬더라면 돈과 향락에 빠져 지금쯤 염라대왕 앞에서 싹싹 빌고 있지 않겠느냐”며 환하게 웃는다. 일가상 시상식은 6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충정로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열린다. 화성=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