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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일가상

농업부문

카토 겐조우(加藤源甸)
카토 겐조우(加藤源甸)
일본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

"혼자서 한 걸음보다는 백 사람이 함께 한 걸음을"

카토 겐조우 선생은 농업협동조합의 발전과 아시아의 농업기술 교류, 발전된 영농환경 조성, 종자개량 등 농업진흥에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다.
2차 대전후 피폐한 일본 농촌에 협동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아시아와의 공생'을 신념으로 '동아시아농업기구회의' 창설의 산파역할을 하였다. 
재일 한국인 지위향상 등의 공로로 1985년에는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1) 전후 일본의 농업 진흥과 농촌 복지 향상에 기여 
  1951년 : 카토 겐조우씨는 농업은 곧 생명 산업이라고 하는 자신의 신념과 "1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1인을 위하여"라는 협동조합 이념을 접목시켜 일생을 그 신념과 이념의 실천으로 일관해 왔다.
  대학졸업 후, 출신지의 네리마 농협에 투신하여 농지정비, 우량 종자 및 영농자 재의 보급, 농산물 판로와 개척, 영농 지도 등 동경 지역의 영농환경조성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네리마구 의회 의원, 동경도 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농업 분야 의 제도 정비를 주도하여 전후 동경 지역 농업 기반 건설 및 농업 진흥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고도산업사회로 변모되어 가는 시대적 상황에 대처하여 작목을 특화하고 물류비 용을 최소화하는 농업 전략을 보급하여 동경 지역의 도시근교형 선진농업 건설을 주도하였다. 
  1972년 : 도농 간의 주거환경의 격차 해소를 위하여 '농과 주가 조화를 이루는 마 을 만들기'를 기본 신념으로 한 '농주개발협회'를 설립하고 농촌 주택의 개선과 농촌 환경의 조성에 이바지하였다. 1972년 설립 이래, 연간 2000호 이상의 양질의 농촌 주택을 공급해 왔다. 
  1981년 : 카토 겐조우 씨의 이러한 노력과 업적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아 1981년 일본 정부로부터 표 창받은 바 있다. 
  1996년 : 국내외적인 농업 환경의 변화에 발맞추어 네리마 농협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대규모 합병농협인 아오바 농협을 설립, 보다 효율적인 농민 조직으로서의 변신을 이루었다. 출신지인 동경 지역의 농업, 농촌 진흥에 대한 공적으로 1996년, 일본전국농업협 동조합중앙회의 부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특히 농촌 복지를 전국적으로 확대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 한일 민간 교류 확대 및 한국 농업 발전에 기여 
카토 겐조우 씨는 농업, 문화, 사회적으로 공통점이 많은 한국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양국간 농업, 사회, 문화 교류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역사적인 상처가 깊게 배여 있는 한일 간의 소원한 관계에 대해 진심 어린 반성 을 하고 있던 차에, 흙과 생명을 지킨다는 인류애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양 국 농업인의 순수한 교류를 통해 관계 개선과 공동 번영을 추구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1960년대 초, 아직 국교정상화가 되지 않았던 양국을 왕래하며 양국 농업의 인적, 물적, 기술적 교류의 추진을 시작하였다. 
  1960년-1967년 : 자신이 조합장으로 재직하던 네리마 농협과 한국의 서울시 농협 간의 자 매결연을 성사시켰다. 당시 아직 낙후했던 서울 지역의 농업 환경을 개선하는데 일말의 조력을 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자매결연을 통해 우량 종자 및 종묘의 개발 기술 전수, 농업지도자 연수 등 보다 선진적인 노하우의 전달이 이루어졌다. 이는 서울시 농협의 영농지도 수준의 향상에 기여하였고 결과적으로 서울 지역 농민의 영농 수준 향상으로 이어졌다. 34년에 걸친 자매결연 기간 동 안 총 400여 명의 인원이 상호 교환 연수를 하였으며 현재에도 매년 2회에 걸쳐 30여 명이 교환 연수를 하고 있다. 
  농업 교류를 통해 맺은 농업계 인사와의 인연을 항상 소중히 여겨 왔다. 1979년 에 작고한 서울 지역의 농업계 원로인 고 권태헌 씨와 오랜동안 교분을 유지 하여 왔고 1997년 고 권태헌 씨의 흉상 건립을 위해 거금의 사재를 기탁하기도 하였다.
  서울 지역에 수재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이 농업이라고 해서 잊 지 않고 수재의연금을 기탁하는 등 세세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1991년부터 해마다, 복숭아 산지로 유명한 일본 야마나시 현의 이치노미야 지역 으로 전주 지역의 영농지도자들을 초빙하여 선진 재배기술을 공유할 수 있도록 주선함에 따라 전주 지역의 영농 수준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교류 초년 도에 복숭아 재배 전문가 2명을 초빙하여 6개월간 현지의 복숭아 재배 농가에서 숙식하면서 품종개량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전주 지 역에서 생산되는 당도 9-11도 정도의 기존 복숭아는 당도 14도의 고품질 복숭아 로 개량되었다. 수확 시기에 따라 전주백도 1호에서 5호까지로 이름이 붙여진 이 복숭아는 이후 전주 지역이 복숭아 산지로 이름을 떨치게 된 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또 당시 우리 농업 분야에서 가장 낙후된 분야 중 하나인 유통분야의 기술 지도를 통해 농산물의 체계적인 관리와 판매, 영농활동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전주 지역과 이치노미야 지역 사이에는 1997년까지 총 200여 명의 상호 교환 연수가 이루어졌고 연수 시에는 반드시 비슷한 조건의 농가에서 홈스테이를 하도록 주선하여 기술 교류를 넘어선 인간적인 교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1974년-1994년 
  일본 농업을 연구하기 위해 파견된 한국의 농업전문가(당시 농림부 사무관)가 활발히 연구 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물심 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 았다. 자신의 사무실을 6개월간 무상으로 사용하게 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하였다. 한편 1974년 설립된 네리마구 한일우호협회의 회장으로서 정기 간담회를 개최하 여 양국간 우호 증진을 도모하였으며 재일 한국인의 애로사항을 일본 정부에 건 의하는 등 한국인 지위 향상에 노력하였다. 또 서울시 도봉구와의 자매결연을 주도하여 농업분야를 넘어선 순수 민간교류를 통한 한일 우호 증진에도 기여하였다. 
  재일교포의 불우한 처지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그 처우 개선에 노력하였다. 특히 재일 민단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재일교포의 지위 향상에 이바지하였다. 
  카토 겐조우씨의 이러한 한일 교류 및 친선 관계 유지에 있어서의 활약과 업적은 한국 정부 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1985년, 한일 친선 및 민간 외교에 대한 기여와 재일 민단 활동 지원을 통한 교포의 지위 향상에 대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 였다. 
  (3) 아시아-직역의 농업 협력에 기여 
  '아시아와의 공생'을 기본적인 이념으로 삼아 아시아 지역의 농업부문의 협력에 노력해 왔다. 
 우루과이라운드가 한창인 1990년, 세계적인 농업 무역질서가 일부 농산물 수출국 위주로 전환되어 가는 상황에 대응하여 한국, 대만, 일본 삼국의 협력과 공동대처를 주창하였다. 결과, 삼국의 민간농업단체를 회원으로 한 '동아시아농업기구회의'가 출범하는 데 산파 역할을 하였다. '동아시아농업기구회의'는 동년 11월 동경에서 2차 총회를 가지고 농산물시장개방 반대 성명서를 채택하였다. 
  1990년 : 아시아 지역의 특산물의 수출입에 대해서는 공생이라는 대승적인 관점에서 확대 를 추진하여 왔다. 특히, 일본 내의 한국 김치 보급을 위해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 끼지 않았다. 일본에서 개최되는 국제식품전에서의 한국 김치의 홍보 및 일본의 농협조직을 통한 김치 보급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1993년 전주 지역의 농촌 부녀자 20여 명을 초빙하여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한국 김치 담그기 강습회' 를 열도록 주선한 것을 필두로 총 4차례에 걸쳐 일본 내에서 김치강습회를 개최 하도록 하여 한국의 김치가 일본에서 붐을 일으키게 하는 데에도 일조하였다. 
  중국과의 농업 및 민간 교류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그 공로로 1994년에 중국 상해시 인민정부로부터 표창받았다. 
  (4) 타인에 모범이 되는 인품과 청렴한 생활상 
1990년 : 일상적인 생활 태도도 항상 근면 검소를 생활 신조로 강조하고 있으며 농민의 대표인 자신이 사치를 할 수 없다며 74세인 고령에도 불구하고 출퇴근을 전철로 하고 있다. 또한 해외 출장 시에도 반드시 이코노미석만을 이용하며, 숙박도 저렴한 일반객실만을 고집하고 있다.

학력 및 주요 경력

▣ 학    력
1951. 3     일본대학 법문학부 졸업 

▣ 경    력
1951. 4     연마농업협동조합 이사 
1953. 4     연마농업협동조합 상무이사 
1955. 4     연마농업협동조합 전무이사 제
1955. 9     동경도 연마구 의회의원
1963. 7     연마농업협동조합 조합장
1965. 7     동경도 의회의원
1966. 6     동경도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이사
1966. 8     동경도 농업회 의회의원
1968. 7     동경도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 
1969. 6     동경도 농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 
1972. 9     사단법인 동경도 농주개발협회 회장이사 
1975. 3     동경도 공제농협연합회 이사 
1976. 4     동경도 농림어업단체건강보험조합 이사장 
1978. 7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 이사
1982. 7     동경농림통계협회 회장 
1993. 6     동경도 신용농협연합회 대표이사회장
                    동경도 경제농협연합회 대표이사회장 
                    동경도 공제농협연합회 대표이사회장 
                    동경도 후생농협연합회 대표이사회장 
                    동경도 농협신용기금협회 회장이사 
1994. 5     재단법인 전국농협임직원공제회 회장이사 
1994. 6     주식회사 전국농협관광 취체역 
1996. 7     전국농림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 
                    사단법인 지역사회계획센터 이사장 
1997. 4     동경도 아오바농업협동조합 대표이사회장 사단법인 이에노히카리협회 이사 

▣ 수상업적 

1962. 11     동경도농업협동조합중앙회장 표창 
1977. 11     연마구장 표창 (납세공로) 
1981. 10     동경도지사 표창 (농림수산공로) 
1981. 11     황완 장 (농림수산공로) 
1982. 3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장 표창 
1982. 11     재단법인 내전농업진흥회이사장 표창 
1985. 5      국민훈장 동백장 (한일 민간교류진흥 공로) 
1987. 3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장 표창 
1994. 9      백옥난 장 (상해시 인민정부) 
1997. 11     재단법인 내전농업진흥회이사장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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