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일가상
농업부문
주옥로
풀무학교 설립자
“한국의 위대한 농민상”
1958년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어려웠던 농촌 현실 속에서 '풀무학원'을 설립하여 농촌의 젊은이들을 이 사회와 민족을 지켜나갈 '위대한 평민'으로 길러내겠다는 교육이념을 실천한 교육계의 선각자이다. 또 '풀무신용협동조합', '소비조합', '어린이집' 운영 등을 통해 농촌사회 복지사업에 기여해 왔다. 퇴임 후에는 <성서생활>지를 만들며 전도에 힘쓰고 있다.
주옥로 선생은 1958년, 어려웠던 농촌 현실 속에서 '풀무학원'을 설립하여 30여 년간 농촌의 젊은이들을 '위대한 평민'으로 길러내겠다는 교육이념을 실천해왔으며, 또 '풀무신용협동조합', '소비조합', '어린이의 집' 운영 등을 통해 농촌사회 복지사업에 기여해왔다.
주옥로 선생은 1950년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홍동면에 내려와 홍동감리교회 초대 전도자로 부임하여 3년간 목회생활을 하면서 52년 1월부터는 개인적으로 <성서생활>지를 발간하는 등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지역사회운동에 전념했다.
1952년 모교인 홍동국민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그는, 60명 졸업생 가운데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이 5∼6명에 불과한 현실을 보게 되었다.
그 후 농민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농촌을 지키기 위해서는 농민교육이 절실함을 느끼고 그와 뜻을 같이하는 이찬갑 선생 (고 이승훈 선생의 증손)과 함께 58년 3월 풀무학원을 개교하여 초대 교장에 부임했다. 당시 교사는 15명 남짓한 초가였고 학생 수는 18명에 불과했다.
처음 개교했을 당시의 상황은 학생들에게나 교사들에게나 매우 어려웠다. 주옥로 선생이 토지를 제공하여 개교는 하였으나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수업료도 제대로 낼 수 없었던 학생들은 보리때 보리 한 가마, 벼때 벼 한 가마로 수업료를 대신했다. 그러나 주옥로 선생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30여년간 풀무로 쇠를 단련하듯 성서의 진리 위에 농촌의 젊은이를 연단하여 묵묵히 농민교육에 헌신해왔다.
이렇게 시작한 풀무학원은 66년 고등학교 과정 학력 인정교가 되었고, 80년에는 인근에 홍동중학교가 생김으로써 공민(중학)과정은 폐지되고 고등학교과정만 남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가 되었다.
이미 30여년 전에 이 사회를 떠받치고 이 민족을 지켜나갈 기본층인 농민들에게 '위대한 평민상'을 일깨워준 주옥로 선생. 그는 바로 오늘의 교육현실을 예견하고 교육계의 방향을 가르쳐준 교육계의 선각자이기도 했다.
이제 풀무학원장에서 퇴임한 그는 그동안 아쉬워했던 전도자로서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성서생활>지를 만들며 전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으며, 향토사학회 회원들과 함께 홍성군 향토사도 연구, 정리하고 있다.
학력 및 주요 경력
▣ 학 력
1941.12 예산공립농업학교 졸업
1950. 3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 경 력
1951. 4 홍동감리교회 초대 전도사로 3년간 목회
1954.11 『가정성서연구회』설립 6년간 주도
1958 밝맑 이찬갑 선생과 풀무고등공민학교 설립
1958 초대 교장 취임, 풀무신용협동조합 창립, 이사장 취임(15년간)
1977.11 학교법인 풀무학원 인가, 초대 이사장 취임
1979 - 1989 한국신협 농촌부 충남 전문위원 위촉
1980 『진리와 교육』회갑 문집 발간
1981 - 1989 한국농민교육협의회 부회장
1989. 6 조양문화제 보호위 위원장 취임
1990.10 홍성군지 편찬위원 "史前史" 집필
1991. 5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학원장 취임
▣ 수상업적
1982. 4 梅軒 문화제 제1회 농민상 수상
1984. 9 제1회 洪州대상 수상
풀무농업고등학교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poolmo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