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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일가상

사회공익부문

엠마 프라이싱거 (Emma Freisinger)
엠마 프라이싱거 (Emma Freisinger)
대구 가톨릭피부과의원 원장

"가장 값진 보물은 '사랑의 나눔"


엠마 프라이싱거 수상자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29세에 결혼도 마다하고 한국에 와서 오직 나환자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한평생을 일해 왔다. 그녀는 의료사업뿐만 아니라 나환자자녀 교육비 지원, 생계 자립지원, 완치된 나환자의 사회복귀 등에 힘쓰고 있으며, 특히 구라후원회인 '릴리회'를 통해 나병계몽과 환자자립교육을 1961년부터 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여사의 손길을 거친 나환자는 연 100만 여명에 이르고 있다.

 

  1950년대 후반 나환자들이 수용소를 나와 거리를 배회하며 구걸하는 참상이 드러난 것을 계기로 천주교 대구 대교구에서 구라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때는 환자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당장 거처해야 할 주택과 먹을 식량이 더 긴박한 문제였기 때문에 구호사업과 치료사업을 동시에 전개해야 할 실정이었다. 
  1961년 나환자의 치료를 위해 이들을 간호하여 돌봐줄 사람을 구하던 중 이국땅 오스트리아에서 엠마 프라이싱거라는 간호원이 자원하여 오게 되었다. 
  나환자도 일반환자와 같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을 수 있는 현대식 병원을 건립하고자 추진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여러 차례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마침내 병원을 건립하게 되면서 엠마 프라이싱거 여사께서 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당시 재정사정은 빈약하여 병원건립뿐 아니라 운영비, 인건비, 치료약품까지 외국원조단체의 지원을 받았다. 
  병원건립을 반대하던 주민들도 엠마원장의 무료치료와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 점차로 많은 주민들이 병원을 이용하게 되었으며, 의료사업이외에도 사회복지사업으로 재가 환자 자립지원, 환자자녀 학비보조와 직업알선, 불구환자, 무의탁자, 노령환자 입원보호를 추진하였다. 또한 구라후원회인 '릴리회'를 통해 회원모집 및 기금조성, 나사업 홍보 및 회보발간사업을 전개하고 기타 나병계몽과 환자 자립 교육을 1961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학력 및 주요 경력

▣ 학   력
1957. 9            오스트리아 살츠버그 간호대학 졸업 
1980. 2            교육학 박사

▣ 경   력 
1957-1961         오스트리아 살츠버그 도립병원 간호사 
1961. 4           나환자 치료목적으로 한국에 옴 
1961. 10          나환자 마을(은양원, 신락원)에 거주하면서 나환자 치료에 봉사 
1963              거주지를 현재 병원으로 옮기고 나환자 진료 및 영세민 무료 진료 
1966. 2           가톨릭피부과병원장 (현재)
1966. 5           오스트리아카톨릭부인회 주한대표 (현재) 
1971. 7           한국카톨릭나사업 연합회장
1973. 4           서독구라협회 주한대표 (현재) 
1977. 11          릴리회장 (현재) 
1978              전국 나정착장 자조회 총재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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