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일가상
산업부문
박종규
주식회사 한국 특수선 이사
"종업원이 기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한국특수선(주) 사장으로 기업의 '뒷거래 배척', '회계공개' 등 한국 경제계의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서고 있는 바른경제동인회를 이끌면서 70년대부터 20여년간 한국 해사 사업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 특수화물 수송분야 개척의 선구자이며, 선박관리 체계 개선과 획기적 경영성과 달성, 선박자동화와 첨단기법 연구도입 등 여러 부문에 공헌하였다.
1970-현 재 특수화물의 국내선 수송 분야 개척
1986-현 재 선장에게 선박의 상당 부문 소유권 인정하는 MY SHIP 제도를 국내 최초로 도입,선박의 효율적 관리의 선례를 남겼고 선원 유족 보상제도의 현실화로 노사 화합의 새 전기 이룩
1993-현 재 기업인의 의식개혁 선도와 풍토 조성을 노력하는 {바른경제동인회} 창립에 주도적 역할
1989-현 재 경실련 임원으로서 경제등 한국 사회 제 분야의 정의 구현을 위해 헌신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 대한해운공사 과장을 거쳐 70년대부터 20여년간 한국 해사사업의 틀 바른 발전을 위해 오직 해사업 환경 개선에 헌신해온 그는 해운업계에선 이미 공로가 큰 인물로 통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상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으나 오랜 역사적 통념은 대륙중심적 사고를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방 후 국내외의 환경 변화로 자의반 타의반 대륙과 단절의 길을 걸으면서 대륙과 연결되는 모든 통로를 상실한 우리(남한)로서는 어쩔 수 없이 해양을 통한 발전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오늘의 성장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주,객관적인 정세와 실정에도 불구, 바다와 관련된 해사업은 아직 내륙의 사업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사회 여러 분야의 무관심속에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해사 관계자들은 조선, 해운, 수산, 해양 개발 등 해사업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여전히 수공업적이고 영세하며 뚜렷한 정책 방향성도 부재한 상태라고들 평가하고 있다. 이로인해 해사업에 종사자들은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해사업 발전은 물론, 국민 경제 발전을 위해 바다와 싸우고 있다.
현재 세계의 경제 전략은 점차 해양에 대한 관심 고조와 투자로 집약되어 가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도 동북아 항로의 항구 역할 가능성이 점점 커가고 있는 우리 실정을 고려한다면 현재 해사업이 처해 있는 상황 개선은 국제 경쟁력 강화와 민족 생존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한국특수선의 박사장은 바로 이러한 점을 일찍부터 깨닫고 우리나라 해사업의 방향 전환에 진력해왔기에 그에 대한 해사업계의 평가는 남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해사업계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계와 국민들 사이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 되었다. 그것은 그가 대표 간사(회장이나 한가지인 그 직책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를 늘 이렇게 부르고 있다)로 있는 {바른 경제 동인회(동인회)}의 역할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후원하던 기업인들이 중심이되어 93년 3월 발족된 {동인회}는 새로운 기업철학과 기업윤리의 확립만이 환경오염, 부정부패, 정경유착, 불공정 거래 등의 부정적 현실에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박사장은 {동인회}를 통해 우리 경제계의 고질병인 △ 모든 뒷거래의 배격 △ 공사구분과 회계 공개 △ 창의와 기술개발로 소비자 이익 극대화 △ 근검절약의 생활화 △ 종업원 특수 장려와 후생복지 향상에 최선 등의 {기업인 신생활 운동}을 주창하고 이 운동의 확산을 위해 오늘도 한국 기업인의 의식 개혁을 외치는 {기업인의 등대지기}가 되었다.
그는 한국특수선의 창업이래 지금까지 '종업원이 기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경영 철학으로 사주 조합을 통해 퇴사한 직원을 포함, 전직원이 54.17%의 주식을 소유토록 하고 본인은 33.33%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문 경영인 제도 확립을 위해 처음부터 자식들의 입사를 제한, 직원 가운데 대표 이사가 발탁될 수 있게 배려하고있다. 이와같이 올바른 기업운영을 하고 있는 박사장은 그 자신부터가 {동인회}의 선언 내용을 실천하고 있는 이 시대의 균형잡힌 뛰어난 기업인임이 틀림없다. 그런 그이기에 수시로 선박에 승선, 직원의 안전과 고충을 직접 경험하며 그들의 고통 해결을 위해 남다르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1) 특수화물 수송분야 개척 선구자로 화공 약품, 액화 가스, 냉동 냉장 화물 등 적기 안전 수송에 공헌
- 불모지였던 우리나라 특수화물 수송에 관심을 가지고 1970년대 초부터 필요한 기술 인력 등을 확보, 외국 배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특수화물을 국내선으로 수송하므로써 적기 수송과 가격 안정 등에 크게 기여하였음은 물론, 이에 따른 외화 절약에도 공헌
- 특수 위험 화물 수송부문에 개척자 역할을 다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외항 해운 발전에 공헌 (2) 선박관리 체계(MY SHIP SYSTEM) 개선과 획기적 경영 성과 달성
- 해운산업 합리화 당시, 냉동냉장 수송 분야 부실 기업 등을 통폐합했으나, 관련 화주와의 장기 수송계약, 해외 시장의 적극적 개척과 자본 증자, 제반 자구대책을 이행, 기업 경영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1988년부터는 흑자 기업으로 전환
- 선박 관리 체계에서도 선정에게 상당 부문 소유권을 인정하는 MY SHIP 제도라는 독특한 기법을 국내 최초로 채택 도입해 선박의 효율적 관리에 의한 비용 절감은 물론, 노사화합의 새로운 장을 선보임
(3) 선박 자동화와 첨단 기법 도입 연구로 해운 사업의 장기 발전 기반을 구축
- 한국선주협회 부회장, 동협회 해무위원장직을 맡아 업계의 체질 개선과 선주의 사고 전환 등 평소 자신의 신념대로 공공업무에도 최선을 다하는 한편, 선진 해운국에서 시험 단계에 있는 선박 자동화 연구에 전념, 수차 자비로 일본 등 해외 출장은 물론, 관련 서적의 연구와 학계와의 협력 체제를 유지하면서 최신 선박 자동화의 실용성을 연구, '89년에는 1차 18인승 자동화 선박을 실용화하고 올해에는 12인승 자동화 선박을 실제 운영하기 위한 제반 학제와 법제의 개편 작업을 추진하는 등 한국 해운 경영의 획기적 기반 마련에 중추적 역할 수행
(4) 선원 제도 근대화 추진과 해양계 학교 후원으로 후진 양성에 기여
- 범해운단체로 구성된 {선원 제도 근대화 추진위원회}를 구성, 운영하면서 선박 자동화에 따른 다목적 근대화 선원 제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운항사 제도를 위한 '선박 직원법의 개정 방향'을 정립하고 법률 개정안 완료시까지 2년여의 노력을 경주, 선원 제도 근대화 작업을 이루어냄
- 해양대학과 해양전문대생의 병역문제와 관련된 병역법 개정안의 합리적 유도를 위해 동서문제연구소 등 각급 유관 연구소와 세미나를 재초하고 관련 기관의 설득에 직접 나서 해양계 학생의 병역 문제를 원만히 해결, 지원 학생들의 자질 향상에 크게 기여
- 목포 해양대학 명예 학장으로 추대되어 학계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대학 교수들의 연구비를 직접 지원하는 등 해양계 학교 발전을 위해 헌신, 노력
(5) 학회의 지원과 산학협동체제의 강화로 해운 관련 학술 기반 확충을 도모
- 해운관련 학외인 한국해법회, 해양학회와의 긴밀한 유대 유지를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하였으며, 1989년 해운학회의 기금 충당을 위해 모금위원장직을 맡아 3천여만원의 후원금을 각출 지원하였으며, 한국선주협회 회원사들을 설득해 해양학회의 공식 지원의 계기를 만드는데 앞장서 산학협동의 강화에 공헌
- '해로문제연구소'와의 제반 협조를 통해 해로의 중요성과 안보의 관계를 정립하는 연구 보고서를 출간, 한국 해운과 해로의 국민 경제와 안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키는데 물심양면으로 헌신
(6) 노사협력의 기반 구축과 선원 유족 보상제도의 현실화
- 해무위원장으로서 노동조합연맹측과의 격의없는 대화로 해상노조의 요구 사항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이를 船社에 설득시켜 상호 양보와 협력의 기틀을 마련, 勞.社.政. 간담회를 정례화해 상설 대화의 광장을 구축했으며 국내 산업계의 최초로 노사간의 협의체인 '외항 상선 선원 정책 협의회'를 구성, 노사화합에 새로운 전기를 이룸
- 선박 사고시 유족 보상문제로 인해 피해자측의 무리한 보상 요구와 폭력 사태를 예방하고 직급을 막론, 유가족측에게 최소한의 법정 보상금과 합의 보상금 5천만원 확보를 위해 1년여에 걸친노력을 기울여 이를 실현시켜 노사평화와 분규 예방에 획기적 계기를 마련
(7) 해운 뿌리찾기 운동 전개와 해양 사상 고취에 노력
-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특성을 감안, 이를 뒷받침할 해양 사상 고취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대국민 해양 사상 고취에 앞장서 한국해양소년단 활동을 지원, 촉진시켰으며 소년단 운영 재원 확보를 위해 적극 노력
(8) 선원 인력난 해소와 한중 해운협력에 공헌
- 극심한 선원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항 상선 선원정책협의회에서 노사간의 합의를 도출, 외국인 선원의 승선과 선원의 사관화, 병역 특례 제도를 수립해 고용안정과 외항상선의 국제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
- 특히 중국 연변 지역의 동포들을 선원으로 양성하는 교육기관의 설립을 지원해 동포들의 생활 향상에도 상당한 도움을 주는 한편, 중국측과 한국측간의 중국인 선원 고용 창구를 일원화하여 한중간 민간해운 협력에 새로운 전기를 이룩하는 등 북방 정책 전개에 이바지
학력 및 주요 경력
▣ 학 력
1955 서울고등학교 졸업
1961 서울대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졸업
▣ 경 력
1960-66 대한해운공사 조선과 과장
1970-84 한국캐미칼해운(주) 대표 이사
1984-현 재 한국특수선(주) 대표 이사
1986-현 재 한국선주협회 부회장, 한국선주협회 해무위원장
1993-현 재 바른경제동인회 대표 간사
1989-현 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중앙상임집행위원
1994-현 재 경실련 중앙위원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