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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일가상

사회공익부문

강원희
강원희
선교사

"보다 헌신된 섬김의 삶"

 강원희 선교사는 14년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제3세계 국가에서 의료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소외되고 가난한 빈민촌 사람들과 거지들에게 헌신적인 의료활동으로 따뜻한 인간애를 전하고 있다. 또한 그가 경영한 통기 진료소에서 6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일주일 중 화, 목에는 이동 진료반을 조직하여 봉사하고 있다.


  인류가 함께 감동하는 사람, 예컨대 슈바이처나 마더 테레사와 같은 인물을 배출한 나라는 어쩌면 핵무기에 버금가는 국력을 소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 일가상 사회공익부문 수상자로 결정된 강원희 선교사는 그런 점에서 우리의 자랑이자 국력인 셈이다. 
  1936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출생, 서울에서 연세대 의대를 졸업(1961년)한뒤 전주예수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의술을 가지고 사회봉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70년 강원도의 무의촌에 병원을 연 뒤부터다. 같은 해 속초에서 <대동의원>을 개업한 뒤로는 10여년동안 이 지역 가난한 사람들의 <주치의>노릇을 했다. 
  1982년, 그는 한경직 목사의 소개로 네팔을 향한다. 학창시절부터 꿈꿔온 자신의 모습이었다. 네팔 제 2의 도시 포카라시에 위치한 국제선교단체INF(International Nepal Fellowship)산하의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시간을 쪼개 거지소굴을 찾아 무료진료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거지들의 <형님>으로 불렸다. 
  1987년, 그는 5년간의 네팔생활을 정리하고 이번엔 방글라데시로 향했다. 수도 다카 부근에 세워진 난민수용소내의 병원(진료소)이 근무지였다. 매일 130명 정도의 환자를 돌봐야 했던 그곳에서도 그는 주말이면 어김 없이 벽지를 뛰어다니며 무료진료를 폈다. 그곳 아이들을 집으로 초청해 사랑을 나누고 그들의 후견인 같은 친구가 됐다. 
  1991년, 그는 다시 스리랑카로 일터를 옮겼으며 현재는 그의 첫 봉사지역 네팔로 돌아와 노년의 봉사활동을 꾸리고 있다. 
  그의 이력을 소개하면서 우리는 그의 봉사정신, 그 밑바닥에 도도히 흐르는 기독교신앙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말한다. "왜 내가 이렇게 사느냐구요? 하나님의 사랑때문이지요. 내가 받은 그 사랑을 갚기 위해 그분의 사랑이 필요한 이들 곁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해낼겁니다." 
  강원희 선교사의 삶은 일가 선생이 평생 보여준 <예수를 믿고 행하라 영으로 움직이고 믿음으로 움직이고 행동으로 움직이라>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즉 첫째는 60 평생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뒤따른 참 기독교인의 삶이며, 둘째는 하나님이 부여한 의사란 직업(성경이 말하는 <달란트>)으로 소외된 자들에게 베풀어 온 것이며, 셋은 자신의 피를 주면서까지 환자를 돌본 자기희생정신 곧 가나안정신의 실천자란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랑스러움으로 강원희 선교사를 <한국의 슈바이처>라 부르며 그를 우리시대의 師表로 추천한다.

학력 및 주요 경력

▣ 학   력 
1955 - 1961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1961 - 1966      전주예수병원 인턴, 레지던트 수료 

▣ 경   력  
1966-1970         육군 군의관 
1970-1982         강원도 속초시 대동의원 원장 
1982.8-1986. 3   네팔의료선교사 
1987.3-1991. 3   방글라데시 의료선교사 
1991-1995          스리랑카 의료선교사 
1995-1999          네팔 의료선교사 

▣ 수상업적 
1990. 3 제 6회 보령의료봉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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